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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端午)인가? 수릿날인가?
유병상, 수릿날과 단오 의미에 대한 역사적 고찰
유병상

동아시아 삼국의 문자와 문화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은 발전된 중국의 문명과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수 천 년의 세월동안 중국이라는 강대국의 권력을 정점으로 삼국이 하나의 공동체 문화를 이루어왔다. 특히, 한반도는 지정학적 유·불리를 떠나 수탉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거대한 중국 땅의 턱 밑에 붙어 있는 작은 나라라 삼국시대의 고구려를 제외하고는 힘의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사대(事大)의 예를 다하며 국제관계를 유지하였다.

 

일본은 같은 동아시아에 속해있지만 섬나라라는 지정학적 특수함으로 중국에 대한 사대의 예를 지키기도 했지만, 중국의 통제력을 벗어나 자국만의 독특한 권력과 문화를 형성하면서 대륙과는 다른 섬나라 특유의 문명과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조선시대가 멸망하기까지 동아시아 삼국은 공통문자인 ‘한자’를 공유하면서 문자생활을 영위하였다. 물론 조선은 훈민정음이 창제되었고 일본은 가나문자가 있었지만 공식문자는 한자였다. 그래서 발전된 중국으로부터 한문 서적을 통한 다양한 정보와 문화 사상이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전래되었다. 심지어 한반도에는 중국의 영향이 더욱 심하여 지명에서 중국과 같은 한자어로 이루어진 지명들이 많다.

 

일본은 같은 한자문화권이지만 자신들만 사용하는 뜻의 한자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일본식 한자말이 우리 한자어와는 다른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서양의 언어를 번역어로 사용하거나 그들만의 어휘체계에 있는 한자어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서양식 번역어의 경우 일본식 한자말이 많은 것은 서양식 근대화를 먼저 이룩하면서 서양말을 일본식 한자어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알고 전통 민속놀이와 문화에 대한 한자어와 우리말의 상관관계를 이해해야 민속에 대한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단오의 연원(淵源)

우리나라 민속전통에 보면 같은 숫자의 달과 날이 겹치는 날을 명절로 삼아 즐기는 날이 많이 있다. 이는 음력에서 홀수를 양이라 하여 좋은 날로 짝수는 음으로 여기는 음양사상의 전통 때문이다. 그래서 음력 1월 1일은 새해를 시작하는 첫날이라 ‘뛰어난 날’이라는 의미의 ‘설날’이라 한다. 3월 3일은 제비가 돌아온다는 속설이 있는 ‘삼짇날’이다. 5월 5일은 양반들은 ‘단오(端午)’또는 ‘단오절(端午節)’이라 불렀으며 천중절(天中節)이라고도 했다. 평민들은 ‘수릿날’이라 불렀다. 7월 7일은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七夕)’이다. 그리고 9월 9일은 ‘중구(重九)’ 또는 ‘중양절(重陽節)’이라 불렀다.

 

농사가 주된 산업이었던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음력 5월이 되면 한창 농사 일이 바쁜 시절이다. 그래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개인 혼자서는 모든 농사일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각 마을 별로 단합된 노동력으로 각 가정의 일을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두레’라는 공동 노동의 협력이 이루어진다. 이때 힘든 농사일을 북돋기 위해 각 동네별로 농악을 연주하며 일터로 나가게 된다. 물론 제일 선두에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커다란 깃발인 농기(農旗)를 앞세우고 일터로 나간다.

 

이렇게 농사철이 되는 시기에 있는 명절이 ‘단오’인데 농사꾼이 맞이하는 명절의 의미가 다를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전통사회인 조선시대에는 양반과 평민의 뚜렷한 계급사회였다. 양반들은 한자로 문자생활을 하면서 양반문화를 이루었고, 평민(하층민인 상놈까지 포함하지만 평민의 역사적 의미는 상놈과 다르다.)들은 공식문자인 한문을 배울 수도 있었지만 배울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명절의 명칭에도 평민들이 쓰는 용어가 다를 수밖에 없다. 

 

단오는 ‘바를 端(단)’에 ‘낮 午(오)’자를 쓴다. 양반들에게는 전혀 어렵지 않은 한자지만 평민들은 그 한자를 알 이유가 없다. 그래서 평민들은 정확하게 5월 5일이라기 보다는 그때 쯤 산에 나는 산나물로 떡을 해 먹는 날이라서 ‘수릿날’이라 불렀던 것이다.

 

단오는 중국에서 기원한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전국시대에 초나라가 있었다. 이 초나라의 정치가요 시인인 굴원(屈原:BC 343?~BC 278?)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굴원은 초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였지만 정적들에 의해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이 때 지었다는 『어부사(漁父辭)』는 그의 대표작으로 유명하다. 자신의 불우한 삶을 어부와의 대화형식으로 읊은 작품이다. 그러다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멱라수(汨羅水)라는 강에 투신해서 죽었다고 한다. 이날이 음력 5월 5일이라 전해진다. 그런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한 사람들이 물고기가 굴원의 시신을 먹지 못하도록 대나무 잎에 음식을 싸서 던져 주었다고 한다.

 

이 전통이 지금 남아 있는 것이 ‘쫑즈(粽子)’라고 하는 중국의 단오 음식이다. 그리고 굴원의 시신을 먹기 위해 모여드는 물고기를 쫓기 위해 배를 타고 노를 저으며 휘젓고 다녔다고 한다. 이 전통이 지금 남아 용 모양의 배로 경주를 하는 ‘용선절(龍船節:롱촨지에)’이 되었다. 그래서 영어로 단오를 번역할 때 ‘dragon ship day’라고 번역한다.

 

굴원은 조선시대의 양반사회에서도 대단히 인기(?) 있는 옛 문학인 선배의 한 사람으로 추앙되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양반들이 단오를 맞이하는 것은 그에 대한 추모의 의미와 함께 양반들의 문화적 소양을 누릴 수 있는 자리였다. 궁중에서도 단오를 맞이해서 다양한 놀이가 있었다. ‘투호(投壺)’라는 놀이도 궁중과 양반가에서 행하던 놀이다. 주로 여자들이 많이 했다.

 

임금을 비롯한 양반의 남자들은 단오를 맞이해서 한시를 짓는 것이 커다란 행사였다. 궁궐에서 임금의 지은 한시의 운자에 맞춰 한시를 지어서 잘 지은 사람에게 얼음을 띄운 앵두화채를 상으로 내리기도 했다. ‘단오선(端午扇)’이라는 고급의 부채를 선물하기도 했다. 

 

시를 짓는 것은 대 선배시인인 굴원을 추모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양반들의 일상적 놀이가 한시를 짓는 것부터 시작한다. 한시를 짓지 못하면 양반으로의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임금이 지은 한시는 궁궐의 기둥에 주련으로 써서 걸기도 했다. 이러한 양반사회의 단오절 문화는 한문의 쇠퇴와 함께 밀려나서 단오 때 한시를 짓는 놀이는 연세 많으신 어르신 중에 몇 분들만 행하는 놀이가 되었다.

 

수릿날의 의미

이러한 의미의 단오와 전통사회에서 평민들이 행했던 놀이는 어떻게 달랐을까? 앞에서 수릿날의 의미를 이야기했지만, 농민들은 한자를 알지도 못했고 정자에 앉아서 한시를 지을 형편은 더욱 못되었다. 당장 눈앞의 농사에 바쁜 시기이니 농사를 짓기 위한 방편으로써 수릿날을 맞이했을 것이다. 수릿날과 단오가 꼭 같을 수는 없었겠지만 지금은 단오라는 한자어 명칭으로 흡수되어 평민들이 썼던 용어는 거의 알지 못한다. 

 

농사를 지으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수릿날 씨름으로 남자의 힘을 과시하는 놀이가 행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힘센 사람은 당연히 대접을 잘 해 주었다. 

 

전통사회에서 16세가 되면 장정(壯丁)에 편입되는 나이다. 그러면 장정의 대우를 받으며 농사일에서 품앗이라는 서로간의 노동의 교환을 해야 한다. 그런데 힘이 없으면 품앗이 하는 데 공평하지 않다. 그래서 수릿날이 되면 장정들의 몫을 시험하는 ‘들돌 들기’가 행해지는 것이다. 모양이 둥근 큰 돌, 중간 돌, 작은 돌이 마을 어귀의 정자나무에 갖다 놓고 힘겨루기를 통해서 장정의 몫을 하는지 시험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이런 놀이를 할 이유도 없지만 농업이 주된 사회였던 전통사회에서는 사람의 노동력으로 일을 해야 했기에 당연한 행사였다. 그래서 힘이 센 사람과 약한 사람을 구별하여 노동력을 구분했던 것이다. 어른에 해당하는 노동의 대가를 받으려면 큰 돌을 들어 메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평민들에게는 단오선이라는 부채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요 그런 고급 부채를 가지고 다닐 수도 없었다. 

 

이렇게 양반 문화에서의 단오와 평민 문화에서의 수릿날이 다르게 행해졌다. 그리고 각 마을에서 평민들이 행하던 수릿날의 놀이는 이제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수릿날의 평민문화 보다는 단오라는 양반 문화의 일부가 현재 우리가 행하는 단오풍정이라 할 수 있다.

 

한시를 지었던 양반들의 문화는 ‘글짓기’로 대체되었다. ‘수리취떡’을 만들어 먹던 행위는 ‘떡메 치기’가 놀이처럼 행해진다. ‘앵두화채’를 먹는 것은 양반들이 한시를 지으며 풍류를 즐기기 위한 음식 문화의 하나다. 평민들은 우아한 품위를 지키며 문화를 즐기기 보다는 앵두라는 맛있는 과일을 먹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단오선(端午扇)’은 더위를 식히고 권위를 지키며 거드름을 피우기 위한 양반들만의 여름 나기 도구였다. 그러니 평민들이 감히 그런 도구를 갖고 다니기란 불가능했다고 봐야 한다.

 

‘창포 물’은 ‘창포탕(菖蒲湯)’이라 하여 머리도 감고 얼굴을 씻어 향기가 나도록 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욕란절(浴蘭節)’이라 하여 난초 물에 목욕을 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난초가 아닌 들에 많이 나는 창포로 목욕도 했다. 이는 몸을 깨끗이 하여 귀신의 범접을 막도록 한다는 믿음이 있던 것이다. 또, 단오에 ‘창포주(菖蒲酒)’를 마시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김치를 담가 먹었다고 한다.

 

‘그네뛰기’가 그나마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단오의 민속놀이로 계승된다고 할 수 있다. 양반과 평민을 할 것 없이 즐길 수 있던 놀이다. 그래도 평민의 아녀자 보다는 양반들이 더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삶을 지탱하는 여유와 육체  노동으로 살아가던 평민 여자들의 생활 방식의 차이가 있다. 『춘향전』에서 이 도령이 춘향이를 처음 보게 되는 것도 그네를 뛰는 춘향이의 모습을  멀리서 보며 첫 눈에 반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일·중의 ‘祭(제)’자 쓰임

‘제사 祭(제)’는 우리나라에서 조상이나 산천에 지내는 일종의 종교적 의식을 뜻하는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 주로 밤에 지내는 의식으로 귀결된다. 시제(時祭) 또는 시향(時享)이라 하여 가을에 5대조 이상의 조상을 묘소에 가서 지내는 제사도 낮에 지내지 않느냐? 또, 초하루와 보름에 지내는 삭망(朔望)도 아침에 지내지 않느냐? 하여 낮에도 제사를 지낸다고 할 수 있겠지만, 본래적 의미에서 다르다.

 

즉, 시제는 5대 이상은 집의 사당에서 제사를 모시지 못하므로 가을에 추수가 다 끝나고 일 년의 농사를 잘 마무리하며 조상에게 고하는 의식과 같다고 보면 된다. 삭망은 아침에 음식을 올리는 상식(上食)의 예절이다. 이 두 가지도 넓은 의미에서 제사라는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지만 전통적인 제사의 의미와는 다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祭(제)’가 제사라는 의미가 확대되어 ‘놀이’의 뜻으로 사용되는 면이 있다. 일본의 전통 축제인 ‘마츠리(祭り)’는 신령에게 지내는 제사이지만 참여자들이 즐겁게 협동 놀이를 통해서 단결을 통한 놀이 문화의 경향이 짙다. 그래서 이러한 ‘祭(제)’자의 뜻으로부터 유추하여 영어의 ‘festival’을 ‘축제(祝祭)’라고 번역어로 쓴 것이 우리나라에 전해져서 지금처럼 쓰인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어떤 큰 행사의 명칭에 반드시 ‘제(祭)’자가 붙은 것은 이러한 일본의 영향이다. 우리나라는 ‘제’의 의미가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과 태도를 요구하지만, 일본은 ‘마츠리’에서 보듯 우리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근래에 대학에서 ‘축제’를 ‘모꼬지’라는 순 우리말로 대체해 사용하기도 하고, ‘대동놀이’라는 용어로 대체하기도 한 것은 이러한 일본식 한자어에 대한 자의식 때문이다. 

 

그러면 ‘강릉단오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강릉단오제는 평민들의 수릿날 행해지던 마당 굿 형태의 연극과 대관령에서 행해지는 국사성황제는 무속신앙과 민간신앙이 겹쳐져서 ‘단오제’라고 이름 붙여진 것이라 여겨진다. 국사성황제는 밤중에 제사를 올리니 당연히 ‘제’가 맞지만, 굿판이 벌어지던 수릿날의 평민들의 놀이 문화는 ‘제’가 아니지만 두 행사가 겹쳐지게 되니 자연히 ‘제’라는 용어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하산곡동에서 행해지는 ‘단오제’는 전혀 전통적이지 않으며 특별히 단오와 관련성도 없다. 제사지내는 형식도 향교의 제사 의례 형식을 그대로 모방하여 행하고 있다. 하산곡동에는 옛날부터 검단산 산신령께 지내는 산신제가 있다. 그래서 따로 단오에 느티나무에서 제사를 지낼 이유가 없다. 단오제의 독축(讀祝)도 검단산 산신제를 변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전통사회의 단오 풍정도 없고 유교적 의례를 신봉하는 제사 주의적 행위에 불과할 따름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단오제(端午祭)’를 행했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단오를 맞이해서 아침에 사당이나 능에 가서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일종의 천신(薦新:그 해에 새로 난 과일이나 농산물을 먼저 신위에 올리는 일)과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야말로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단오의 어떤 놀이의 풍속이 아니라 조상님께 새로운 과일을 올리며 새로운 계절이 시작됨을 고하는 예절의 의미가 짙다.

 

중국에서는 ‘제’라는 한자가 아니라 ‘節(절)’이라는 한자를 사용하여 ‘단오절(端午節)’이라 쓴다. ‘절’은 명절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 ‘節(절)’자의 중국어 발음이 ‘제’이다.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어 음을 그냥 우리말 음으로 받아들여 ‘祭(제)’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날 중국의 큰 행사에 해당하는 말에는 ‘절(節)’을 쓰지 ‘제(祭)’는 쓰지 않는다. 하얼빈에서 행해지는 세계적 얼음 축제인 ‘빙등제’는 ‘氷燈節(빙등절)’인데, 앞말은 우리 말 음으로 읽고 뒷말은 ‘절’을 중국어 음으로 읽으니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확하게 읽으려면 ‘비등절’이라 하든지 아니면 ‘빙떵제’라고 해야 한다.

 

 

수릿날과 단오 날 사이에서

음력 5월 5일을 달력에서 찾아보면 ‘단오’라는 두 글자만 적혀 있지 어떤 달력에도 수릿날이라 적혀 있지 않다. 당연히 전통 민속의 한자어가 자리를 한 것이기에 그렇다. 

 

양반과 평민 혹은 상놈이라는 계급적 인식을 떠나 이제는 전통 사회의 민속을 계승 발전시켜서 우리의 문화전통을 살려서 삶을 풍요롭게 하면 된다. 용어의 맞고 틀리고가 문제도 아니고 전통 놀이의 문제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다만, 한자어로 된 민속전통을 그대로 사용할 때의 중국에서 전래된 민속전통인양 오인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제(祭)’라는 한자의 쓰임도 제대로 알아서 우리의 실정에 맞게 잘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축제 형식의 놀이는 전통사회에서는 ‘굿’이라 했다. 무속적인 냄새가 물씬 풍겨서 지금 사용하기에는 거부감이 있을 수 있지만 말이다. ‘잔치’라는 말도 평민들이 썼던 축제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무슨무슨 ‘큰 잔치’라는 용어도 사용하기도 한다.

 

수릿날은 그냥 수릿날이다. 그 자체에 큰 잔치가 열린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농촌 사회에서 농민들이 단오에 즈음해서 이러 저러한 재미있는 놀이가 행해졌으니 말이다. 단오 날은 그냥 단오다. 단오절이라 불러도 전통사회의 형식 그대로다. 다만 놀이의 형식과 문화 인식이 달랐다. 

 

지금은 단오 또는 단옷날이라는 세시 풍속이 양반 문화와 평민의 놀이 문화가 따로 없다. 일제 침략기를 거치면서 일본식 한자어의 영향으로 잘못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수릿날과 단오의 의미를 함께 사용하여 진정한 세시 풍속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이 옳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단옷날의 풍속과 유래의 대상이 된 사람을 읊은 절창으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선생의 ‘단옷날 장난삼아’라는 한시 ‘端午日戱題(단오일희제)’를 소개한다.

 

올해 단오는 역마을 객사에서 보내니    今年端午在郵亭

누가 창포주 한 병 보내주겠나?        誰送菖蒲酒一甁

오늘은 각서를 물에 던지지 말게나      此日不宣沈角黍

나는 오히려 굴원처럼 깨어 있으니     自家還是屈原醒

 

【한자어 및 풀이】

郵亭 : 역마을의 객사(客舍). 角黍 : 밀가루로 둥근 떡을 만들어 고기와 나물을 소로 넣어 만든 단오절식. 自家 : 자기. 곧 작자 자신. 屈原醒 : 굴원은 위글 참조. 굴원이 깨어 있다는 뜻은, 굴원의「어부사(漁父辭)」라는 글에 ‘衆人皆醉我獨醒(중인개취아독성)’이라는 구절을 말한다. ‘세상 사람들 모두 취했지만 나 홀로 깨어 있다’는 뜻이다. 모두들 선악을 구별 못하고 살아가는 데 나만 홀로 사리를 잘 판단한다는 뜻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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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6/09 [10:07]  최종편집: ⓒ 시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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