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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분화구 산굼부리와 석부작을 보다
<허정분 여행기> 제주 살이...아홉 번째 이야기
허정분

 ‘찬란한 아침을 열고 구름도 쉬어가는 곳, 세계유일의 평지분화구 산굼부리’ 란 수사(修辭)로 안내문의 문구를 장식한 화산의 분화구를 보러간다.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 263호로 지정된 곳이다. 英鳳門 이란 둥근 아치형태의 돌문을 지나면서 장관을 이룬 억새밭이 먼저 반긴다.

 

이곳에서 분화구로 오르는 길이 네 갈래로 나뉘어 있다. 억새밭 길과 돌길 하늘계단 길 구상나무 숲길이 제 각각의 특색으로 안내하는데 평평한 억새밭 길로 들어섰다. 황금물결억새가 탈색의 경지를 넘어서서 허옇게 사위어가는 길이다. 곳곳이 기념사진을 남기려는 발자국에 뭉개지고 쓰러진 상처들로  패여 있다. 사진만큼 아름다운 추억이 남는 장소에서 이 넓은 억새밭의 배경은 로맨틱한 풍경으로 기억될 것이다.

 

▲ 억새 군락지     © 시티뉴스

 

화산분화구여서 큰 오름으로 상상했던 등산로는 억새밭 끝남과 동시에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분화구를 보게 된다. 화산석 바위군락지로 예상했던 무지가 단숨에 깨지는 푸른 생물의 둥근 성지 울울창창한 상록수림과 침엽수 낙엽 떨어진 활엽수림이 공존하는 생물지대였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육지에서나 통하는 말이다. 수억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둥근 원형그대로 오늘까지 푸른 나무들과 저 분화구에 깃댄 무수한 생명들의 모태 역할을 하는 산굼부리, 경이로운 자연의 모습이다. 얼마나 큰 폭발이 있었으면 저렇게 큰 분화구로 패였을까 실제로도 한라산 백록담보다 더 넓고 더 깊다고 한다. 깊이가 140m 넓이가 650m 로 둥근 원형의 둘레가 2km가 된다고 하는데 정상 삼분의 일 정도만 개방했다고 보면 된다.

 

산굼부리는 국가문화재답게 문화해설사가 동행하며 자세한 안내를 해 준다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명절 연휴라서 그분들도 쉰다고 한다. 정상에는 분화구 아래를 자세히 볼 수 있는 망원경까지 설치되어있다. 정상을 지키는 분께 주워들은 이야기로는 그 아래 분화구에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실제로도 붉은 흙살이 바닥에 넓게 드러나 보여 농사를 짓는 밭으로 알았다.

 

▲ 산굼부리 분화구     © 시티뉴스

 

100년 전에 가난한 농부네 6가구가 가족과 함께 이 분화구 안으로 겨울 추위를 피해 들어갔다고 한다. 바람과 추위를 막아주는 최적의 휴식처에서 그들 가족은 농사를 지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제주지만 화산암의 특성상 물은 금방 스며들고 농사도 잘 되었지만 사방이 막힌 여름철 습기와 더위에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다시 분화구 밖으로 나와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때 심은 대나무가 지금도 여전히 화구아래의 모든 땅을 장악해서 제거하기 위해 헬기에 소형포크레인을 달아서 내려 보내 뿌리를 파냈다고 한다. 한 달 내내 작업을 해서 저렇게 밭처럼 보인다는 설명을 해준다.

 

조릿대가 경계를 이룬 정상에는 근방에서 보이는 여러 오름의 사진을 전시해놓아서 찾아보는 재미까지 선사한다. 또 백록담의 상징인 사슴 한 마리가 멋진 뿔을 뽐내며 <漢鹿址>라고 이름붙인 돌탑위에서 한라산을 응시하며 우뚝 서있다. 정상아래 몇 기의 무덤조차 고요한 슬픔으로 아름다운 정경이 되는 이곳 전설이 없으면 섭섭한 곳이다.

 

옛날 옥황상제의 생신날 초대받은 한감이 옥황상제의 셋째 딸과 사랑에 빠졌다. 이를 안 상제의 노함으로 인간세상으로 쫒겨난 둘은 산굼부리에서 살림을 차렸다. 그러나 사냥을 즐기며 동물성식성이던 한감과 나무열매 등으로 식사를 하던 상제의 딸은 결국 거리감을 좁히지 못해 상제의 딸은 인가를 찾아 제주의 천년 묵은 팽나무아래 신당을 차리고 많은 제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신이 되었다. 한편 한감은 산굼부리에서 동물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살면서 그날 사냥 오는 사냥꾼들의 행적에 따라 짙은 안개로 길을 잃게 하거나 재수가 좋게 하는 등 조화를 부려 사냥꾼들은 산굼부리에 제를 올리고 사냥을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너른 잔디광장을 이루는 곳에서 산굼부리를 상징하는 포토 존이 멋진 둘레 길은 끝난다. 반대편 억새밭 군락지 곁으로 구상나무 힐링 길이 조성되어있는데 구상나무의 주성분이 피톤치드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인데 크리스마스트리용으로 외국에 팔아버려 지금은 역수입해 온다는 나무다.(믿거나 말거나?)

 

이 천연적 자생의 분화구에서 겨울의 찬바람을 이겨낼 수많은 동물과 희귀식물의 본향이 왜 나에게는 억새물결 같은 쓸쓸함과 애틋함으로 자리 잡는지 쉽사리 발길을 옮기기가 어렵다. 아마도 입구에 전시된 수십 점의 제주해녀들의 일상을 그린 만화와 사진속의 슬프고 강인한 삶 때문이 아닐까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돌탑에 그분들과 산굼부리를 지키는 모든 신들의 평안도 얹어놓는다.

 

석부작 박물관

제주가 수많은 박물관 전시관의 모태이자 한라산과 화산섬 이라는 자연의 특혜로 국내외의 관광지 일순위로 꼽히는 데는 민간사업자들이 평생 공을 들인 사업장들도 많다. 서귀포시 호근동에 위치한 석부작 박물관도 제주 관광지의 손꼽히는 박물관으로 알려진 곳이다.

 

세계인이 즐겨 찾는 우리나라 대표 관광지로 알려지면서 제주는 개발붐과 함께 원주민들이 보유했던 땅이 서울의 부자들에게 많이 팔렸다고 한다. 감귤나무 한 그루면 자녀하나를 대학까지 가르쳤다는 옛말도 있지만 지금의 현실은 노지에서 기른 감귤은 거의 폐기처분하는 실정이다. 농협에서 노지감귤 1kg을 300원에 수매한다는 현수막을 보며 경악했던 엊그제다. 그래서인지 수확도 안한 내버려둔 귤나무와 트럭으로 귤밭에 내다버린 감귤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한물간 귤나무대신 외지인들은 그들이 산 땅을 그들만의 비밀의 정원으로 꾸미거나 특이식물을 심고 또는 근사한 펜션과 카페로 운영하며 또 다른 투기방식을 찾는다. 철저히 외부와 격리된 이중삼중의 가림막으로 부(富)의 투자를 한 곳도 보았다. 수만 평의 대지에 설치 된 현무암의 괴석들 사이 분재된 소나무가 전시관 못지않은 정원을 주먹만 한 구멍으로 보며 놀란 곳도 있었다. 희귀한 야자수 소철 동백나무 등을 모델로 삼아 찻집을 열고 젊은 연인들을 사진 찍는 장소로 유인하는 곳도 많다.

 

그런 비밀의 화원이 아닌 관광객을 상대로 아름다운 작품을 선보이는 이곳은 무슨 풍경이 나를 사로잡을까 호기심이 가득하다. 예전에 이곳을 찾았을 때의 신비함이 다시 오게 한 장소다. 석부작이란 난이나 분재 등을 돌에 붙여 자라게 만든 관상 장식품이라는 어학풀이다. 비밀의 정원인 이곳 돌담성에 붙어사는 줄기식물들이 입구부터 아름드리나무들을 휘감고 있다.

 

▲ 현무암 분재     © 시티뉴스

 

화산석인 현무암에는 희귀식물인 부처손이 소나무에는 작은 담쟁이 넝쿨이 평생을 동반하는 친구처럼 공존관계를 형성하는 곳이다. 밤새 내린 비, 젖은 공간이 촉촉한 감성으로 다가오는 아름다운 광경들 공들여 가꾼 모든 작품이 빛나는 윤기로 자연에 덧붙인 인위적 공들임을 지극한 생태로 보여준다.

 

구름다리를 지나는 양옆으로 수확 적기인 황금빛 감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또 노란 하귤도 ‘따지마세요’란 문구를 매달고 실내전시관 입구까지 심어진 곳 눈요기로도 충분하다. 2만여 점의 제주자연석과 야생초 분재나무가 자라는 전시관이다. 봄 날씨 같은 실내온도와 층층 현무암 사이사이에 뿌리내린 난과 분재 괴목 한 점 한 점이 생김이 다른 개성을 연출하며 눈 호강을 시킨다.

 

전시관은 몇 개동이 각양각색의 돌 뿐 만아니라 뒤틀리고 깎인 괴목에서도 푸른 식물들을 키우고 있었다. 이름도 생소한 희귀 난과 넉줄고사리 처녀, 돌담, 거미고사리 등이 숙주삼은 괴목에서 기생하는 식물들이다. 천연보호종 식물인 파초일엽이란 난이 온통 전시관 내부 바닥을 감싸며 자라는데 제주 자생난이란다. 소엽, 대엽풍란도 제주민들이 아끼는 난종류며 자생난이라고 한다. 흰 꽃이 핀 난을 보며 가꾼 분들의 정성을 한번 보는 것이 ‘백문이불여일견’이란 말로 떠올랐다.

 

▲ 석부작 진달래꽃     © 시티뉴스

 

저 꽃은 분명 진달래꽃이다. 계단식 야외공원 사철 꽃의 향기로 진동하는 곳이지만 한 겨울의 중심에서 만나는 봄꽃의 상징인 진달래가 계절을 인식하지 못하고 만개한 풍경은 어딘지 애달프다. 수많은 나무와 야생초가 봄을 기다리는 전시장 한편에 분홍빛 꽃잎을 무더기로 피워낸 진달래꽃이다. 겨울이 겨울답지 않은 온난화로 몸살을 앓는 계절의 변화를 청렴, 절제를 꽃말로 삼은 진달래나무까지도 절제를 잃게 만드는 현실의 심각성을 알리러 저리도 일찍 피었나보다.

 

배롱나무의 반들거리는 가지사이로 동백의 꽃 융단사이로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모든 나무를 심은 정원의 기기묘묘한 괴석들이 또 다른 생명을 품은 산책로 곳곳이 천연의 전시장이다. 정상부근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수변식물을 키우고 거친 현무암 구멍에서 뿌리를 내린 야생초가 풀뿌리근성으로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이곳, 흙속에 신분을 숨긴 많은 꽃 이름들이 비비추 옥잠화 관중 할미꽃 등 명찰을 달고 있다.

 

▲ 고란초과 콩짜개 식물     © 시티뉴스

 

또 나이테를 감는 숱한 나무들을 써 붙인 이름으로 아무리 외워도 잎 떨군 나무의 특징을 추정하기란 숲 해설사가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으로 불러준 산딸, 주목, 백금강, 때죽, 감탕, 만년석송, 함박, 아그배, 팥배, 먼나무 등을 호명하며 그림처럼 아름다운 한라산이 내려다보는 이곳 절경을 사진에 담으며 나무와 난과 돌과 훗날의 해후를 혼자 약속했다.

 

나 혼자의 여행길에서 만난 객이 추천하는 곳 제주 오현단과 추사관을 꼭 가보라는 화두가 머릿속을 맴도는 석부작박물관을 떠나며 나도 지구별인 자연에 기생하는 아주 작은 고란초과 식물 콩짜개 잎 같다는 생각으로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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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2/11 [10:00]  최종편집: ⓒ 시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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