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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칠십리 길에서 만나다
<허정분 여행기> 제주 살이...서귀포에서 다섯 번째 이야기
허정분

 외돌개의 절경에 빠지다

서귀포 칠십리는 서귀포시 중앙로에서 남쪽으로 정방폭포 서복전시관 칠십리 음식특화거리와 이중섭 미술관 천지연폭포 새연교를 돌아 칠십리 길에 산재한 수많은 아름다운 절경을 인위적 조형물과 어울리게 조합한 거리다. 칠십리 서쪽 끝부분에 위치한 외돌개까지 포함된 길이다.

 

올레7코스에 속하는 이 해안 길에 국가명승지 제 79호로 지정된 곳이 제주 서귀포 외돌개다. 화산이 폭발하여 흘러내린 용암이 바닷물의 침식작용으로 수직의 바위군단을 형성하고 해안을 이루는 절벽과 넓고 평평한 용암바위와 해송이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 십이동굴의 일부     © 시티뉴스

 

외돌개를 끼고 있는 해안절벽을 황우지(黃牛地) 해안이라고 한다. 이곳 해안 일대가 황소가 강을 건너는 형상으로 보이는 명당터여서 붙여졌다는 일설이 있다. 7코스올레길 시작점부터 800m 가까이 형성된 해안의 기기묘묘한 절벽과 해송, 새파란 바닷물이 들고나는 풍경은 육지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신묘한 아름다움이 물씬 풍기는데 그 해안을 끼고 도는 절경마다 슬프고 기이하고 가슴 아픈 사연들이 깔려있다.

 

동쪽에 있는 외돌개 시작점인 서쪽 황우지해안 십이동굴은 바닷물이 들락날락하여 포구 형태로 반짝이는 해안기슭이다. 모두 열두 동굴이 있다하여 십이동굴로 불리지만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동굴은 여섯 개 정도다. 이 동굴은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군에 의해 인공적으로 판 동굴로 열두 굴이 모두 통하게 되어있다. 전쟁에 패한 일본군이 이 동굴에 수많은 어뢰정과 폭탄을 숨겨 둘 목적이었다고 한다. 패전한 일본이 본국으로 쫓겨 가면서까지 악착같이 제주도민의 노동력을 착취한 동굴을 내려다보는 심정이 착잡하다. 그 기묘한 해안절벽을 배경으로 바닷물이 안 들어오는 해안을 따라 수십 미터의 굴을 팠을 당시의 제주도민들의 희생이 착잡하게 따라오는데 곧바로 또 다른 선경이 펼쳐지는 장관, 황우지 선녀탕이라는 전설이 붙은 용암 암벽으로 새파란 바닷물을 가둔 연못이 서너 개 시선을 끈다.

 

선녀탕으로 직접 내려가기 위해서는 가파른 85계단을 내려가야 하는데 옥빛 바다물결이 절로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여름철 수영 장비를 갖추고 제대로 수영과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장소다. 먼 옛날 인간세상으로 바뀌기 전 신들의 세상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고 제멋대로 주무른 흙덩이로 바닷물을 가두는 성을 쌓아 저런 검은 암벽의 둥근 성이 되었으리라는 상상이 현실인 곳이다.

 

휙 뿌린 씨앗들은 수백 년을 살아낸 괴이한 형태로 바닷바람을 이겨내는 방풍림이 되어주고 섬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오늘까지 아름답고 멋진 자연의 경관을 선사하는 서귀포 칠십리 절경 황우지 선녀 탕이다. 그런데 1968년 8월 20일 침입한 북한군 753부대 제 51호 무장간첩선과 우리 군과 경찰이 6시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 끝에 2명을 생포하고 12명을 사살한 <황우지해안 무장간첩 섬멸 전적비>를 2005년에 세운 설명을 담은 비가 서 있어서 조금은 안타깝고 섬뜩한 느낌이 든다.

 

해안으로 이어진 산책길을 따라 가노라면 야자수와 소철 열대림은 물론 각종 난을 키우는 풍광이 덤으로 따라온다. 먼 이국의 느낌이 물씬한 해안이다. 검은 껍질에 갑골문자를 새긴 해송은 희한하게 바닷가 쪽으로 더 많은 가지를 늘어트린 그림처럼 아름다운 자태로 객을 맞는다.

 

그 중앙에 거북등처럼 평평한 바위가 ‘서귀포 칠십리’ 노래비를 세운 비석을 품고 있다. 수천 개의 암반으로 이루어진 바위동산 크고 작은 분신들이 모두 모양이 다른 개성을 지닌 명물이다. 바위 밑으로는 파도에 부서지는 바닷물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끊임없이 숨쉬는 생명력의 공기를 생물에게 선사한다. 바닷물과 어울린 서귀포 포구가 그림 같다.

 

▲ 외돌개 바위     © 시티뉴스

 

황우지 해안의 백미인 외돌개가 보인다. 해안의 동쪽에 홀로 선 바위, 서로 잇댄 절벽과 떨어져 외돌개라는 지명이 붙은 바위다. 20여m가 넘는 둥근 수직 바위절벽위에 해안과는 다르게 모진 생명 줄을 잡고 있는 작은 소나무들과 마른억새가 흡사 모자처럼 얹힌 외돌개를 보며 연신 폰에 형상을 담는 수많은 관광객의 감탄사에 나도 편승한다.

 

외돌개는 고려말기 충신 최영장군이 원나라 토호들과 싸우다 그들이 바로 앞 범섬으로 퇴각하자 바위를 장군처럼 변장시켜 그 모습을 본 적들이 물러가게 했다는 설이 있어 장군바위로도 불린다는 설명이 안내판에 곁들여 있다.

 

또한 먼 옛날 고기잡이를 나간 할아버지를 날마다 기다리던 할머니가 끝내 할아버지를 못 보고 그 자리에서 죽으면서 그 그리움으로 위로 솟은 긴 바위가 되었단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오던 할아버지는 바위가 된 할머니의 모습에 놀라고 기가 막혀서 울다가 쓰러지며 죽었는데 할아버지도 바위가 되어 낮게 엎드린 자세로 할미바위와 이어졌다고 한다.

 

이런 비극적 설화를 지닌 외돌개 바위의 이미지가 내 눈에는 외롭지만 위풍당당한 장군으로 보였다. 비바람 파도에 제 몸을 깎이면서도 이곳을 찾는 수많은 여행객에게 당당한 호연지기를 보여주는 아름다움, 그 장군을 호위하듯 둘러싼 해송들의 풍경도 감탄사다. 한그루 한그루가 진경산수의 면목을 여지없이 보여주는데 한때 모든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던 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지란 팻말과 포토라인이 서있다.

 

올레 7코스의 끝 지점은 여기서도 4시간쯤은 더 가야한다고 하니 아마도 중문쯤에서나 멎을 길이다. 드문드문 배낭을 멘 올레길 여행자들을 외돌개바위가 전송하는 쪽빛 바닷가에서 나는 삶의 여정을 휴식이란 말로 위안을 삼는다.


이중섭 미술관

서귀포의 중심지에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이 있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인 만큼 먹을거리 볼거리 휴식거리가 넘쳐나는 중심이다. 올레시장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면 나타나는 천지연폭포 정방폭포 시(詩)공원을 비롯해 이중섭거리라는 지명이 붙은 거리가 나타난다. 서귀포항구 바다로 향하는 길이기도 하다. 오른쪽 방향에 벽에 덧대어 지붕을 씌운 인도에 이중섭화가의 그림들이 벽을 장식하고 곧이어 미술관과 화가가 거쳐했던 작은집도 나타난다.

 

▲ 화가 이중섭     © 시티뉴스

미술관 입구에 아래쪽은 실제로 거쳐했던 초가집이 있다. 위쪽은 서귀포극장이 마른 담쟁이 넝쿨에 온통 잠식당해 괴기한 폐관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란다. 그림에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나도 근대미술의 선구자인 박수근 김환기 구본웅 정도의 이름과 소 그림으로 유명한 이중섭은 알고 있다. 이중섭 미술관이 제주에 있다는 것도 거리명을 붙인 것도 신기했고 처음 알았다.

 

미술관 입구에는 소를 세운 조각과 바다가 보이는 곳에 정자와 의자가 있고 바로 아래 화가가 산책했다는 산책로와 옹기종기 돌담으로 경계를 한 작은 텃밭 당시에도 있었다는 나무가 이직도 건재해 있다. 실제로도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이다.

 

이중섭은(1916~1956) 평안남도 평원군의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오산고보시절 미술교사 임용련의 지도를 받은 이중섭이 동경으로 유학을 떠난 해가 1937년이다. 그곳에서 공모전에 출품한 작품으로 두 번이나 큰 상을 받고 원산으로 귀국한 해가 1943년도 였다. 일본유학시절 사귄 일본여인 야마모토 마사코씨가 1945년 한국으로 연인을 찾아와 결혼을 하고 이남덕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준다. 그들 사이에 두 명의 아들이 태어나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원산을 떠나 1951년 서귀포로 피난을 오면서 제주살이가 시작되었다.

 

당시 일 년 가까이 집주인 송태주가 빌려 준 이중섭 부부와 아이들이 살던 1.5평의 단칸방은 이중섭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한다. 네 식구가 살기에는 너무 작은 방, 그래도 가족끼리 껴안고 지내며 사랑을 나누던 시절이 그의 생애에 잊지 못할 행복한 장소로 남아서 그는 <서귀포의 환상>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그렸다. 끼니를 굶었으나 낭만이 있고 가족이 함께했던 피난민 배급으로 살던 가난 속에서도 늘 그림을 그렸고 집주인과 이웃주민의 부탁으로 초상화를 그려주는 등 많은 작품을 바다와 가족을 연계하는 그림으로 나타냈다. 하지만 1952년 부인이 두 아들과 일본으로 떠나면서 이중섭은 가족이 그리운 외로운 생활을 이어간다.

 

모든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 그는 담배를 싼 은박지에 양면으로 그림을 그렸고 미술관에는 그가 그린 은지화가 수십 점 전시되어있다. 또 부인에게 보낸 그림과 편지 부인이 보낸 답장들이 전시되어 보는 사람의 눈길을 뭉클하고 애틋하게 한다. 절친한 친구였던 구상시인이 마련해준 선원증으로 일본에서 가족을 만나고 일주일 만에 돌아와 정처 없이 전국을 떠도는 유랑화가의 외로운 삶에도 그는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다고 한다.

 

▲ 이중섭의 '황소'     © 시티뉴스

 

당시에 여러 차례 전시회를 열고 그림도 판매해 수익도 있었지만 끝내 일본의 가족을 만나러 갈 꿈은 수포로 돌아가고 1956년 거식증과 영양부족이 겹친 간장염으로 40세의 나이에 서대문 적십자병원에서 세상을 뜬 비운의 화가로 남게 되었다. 무연고자로 취급되어 사흘간 시체실에 방치되었던 이중섭은 병원을 찾았던 친구 김이석이 사실을 확인하고 친지들에 의해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혔다.

 

“어디까지나 나는 한국인으로써 한국의 모든 것을 전 세계에 올바르고 당당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안되오. 나는 한국이 낳은 정직한 화공이라오.”부인에게 써 보낸 편지글처럼 ‘한국의 국민화가’며 ‘비운의 천재화가’로 알려진 이중섭의 천재성을 기리는 이중섭미술관은 촉촉 내리는 겨울비와 함께 그의 생애에 가장 행복했다는 서귀포 작은 초가집을 내려다보며 영원한 영생의 그림을 수많은 관람객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 가족과 게 그림설명     © 시티뉴스

 

“ 중섭은 참으로 놀랍게도 그 참혹 속에서 그림을 그려서 남겼다. 판자집 골방에서 시루의 콩나물처럼 끼어 살면서도 그렸고, 부두에서 짐을 부리다 쉬는 참에도 그렸고, 다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그렸고, 대포집 목로판에서도 그렸고, 켄버스나 스케치북이 없으니 합판이나 맨종이, 담뱃갑 은지에다 그렸고, 물감과 붓이 없으니 연필이나 못으로 그렸고, 잘 곳과 먹을 것이 없어도 그렸고, 외로워도 슬퍼도 그렸고, 부산, 제주도, 통영, 진주, 대구, 서울 등을 표랑전진하면서도 그저 그리고 또 그렸다.” 시인 구상이 이중섭의 창작열을 평가한 글이다.

 

천재의 삶은 왜 이리 외롭고 부박했는지 눈물처럼 겨울비 내리는 서귀포 칠십리길에서 나도 외롭고 서럽다.

관광자치도시 이면서 한국에서 가장 많은 박물관 미술관 전시관을 소유한 제주의 내면에는 이토록 예술인에 대한 남다른 배려로 이방인의 발길을 끄는 마력이 곳곳에 있었다.

 

* 허정분: 시집 『벌열미 사람들』 『우리 집 마당은 누가 주인일까』 『울음소리가 희망이다』 『아기별과 할미꽃』 산문집으로 『왜 불러』 등이 있다. 한국작가회의회원, 너른고을문학회원, 2019년경기문화재단창작기금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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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22 [10:07]  최종편집: ⓒ 시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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