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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해맞이 그리고 ‘시인의 집’
<허정분 여행기> 제주 살이...서귀포에서 네 번째 이야기
허정분

 쇠소깍 해변 해맞이

효돈동 도로변에 현수막이 걸렸다. ‘庚子年 새해 해맞이 쇠소깍 해변’ ‘주최: 하효마을 부녀회, 청년회, 노인회, 6시30분’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해돋이 명소 성산일출봉까지 가려던 생각을 바꾸게 하는 문구다. 광주 남한산성에서 해마다 여는 새해맞이 행사가 있듯이 마을에서도 새해 새날을 맞이하는 주민들의 소망과 염원을 담은 새해맞이 행사, 이른 새벽 배낭을 메고 숙소를 나섰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도로에 성산 쪽으로 가는 차량들의 불빛이 이어진다. 쇠소깍은 제주살기 1편에 소개했듯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생물권 자연보호구역이다. 아름다운 경관에 끌려 걷다보면 나타나는 올레길 5~6코스를 연결하는 해변길이 쇠소깍 검은 모래사장이다.

 

▲     © 시티뉴스

쪽빛 호수물이 숲과 어둠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데 해변에서 신나는 리듬을 타고 들려오는 음악이 더 발길을 재촉한다. 걷거나 차로 지전거로 삼삼오오 모여드는 인파가 도로변 상점에 무리지어 보였다. 구름에 가린 하늘에는 붉은 미명만 보이는데 검은 수평선에 불 밝힌 고깃배들의 정경이 새벽부터 조업을 나온 어장인 모양이다.

 

그 검은 해변에 쌓아올린 장작더미에서 타오르는 불빛, 이미 지역인사들의 새해덕담이 끝났는지 무대에서 퍼지는 노래와 리듬에 따라 춤추는 흥겨운 자리가 주민들로 꽉 찬 모습, 새해 첫날부터 저리 신나는 배달민족이 우리다.

 

해변에는 장작불이 타오르며 황금불빛이 일렁이고 쉴 새 없이 새 물결을 일으키는 파도의 숨결이 바닷내를 실어 나른다. 곳곳에 놓인 탁자에는 제주 막걸리가 새벽부터 해장술로 놓여 있는데 모여드는 인파가 천명은 된다고 사회자가 신바람의 추임새를 늘어놓는다.

 

무대 해변을 둘러싼 주변의 세멘계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떠오를 새해를 보려고 장사진을 친 풍경, 한쪽에서는 이곳을 찾은 주민들과 관광객 누구에게나 한 봉지씩 나눠주는 귤 상자가 수북이 쌓여있다. 대추차와 커피도 주민들의 무료봉사다. 소방차까지 대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런 행사가 전통으로 이어 온지 오래된 듯하다.

 

사회자 강순미라고 소개한 여성의 재미난 말솜씨와 관광버스 막춤이 흥겨운 놀이판 “오늘 떠오르는 해는 구름 속에 가려 있지만 여러분 가슴에는 더 뜨거운 한해의 태양이 소망을 접수하며 떠오를 것입니다. 여러분 뜨거운 호응과 박수로 파이팅을 세 번 외칩시다.” 모두 허공을 향해 외치는 함성이 한해의 희망처럼 퍼진다. 흐려서 해를 보긴 어렵다는 걸 알고 왔어도 아쉬웠다.

 

경자년은 흰쥐 해 라고 한다. 쥐띠 생을 불러내 즉석 가위바위보로 쇠소깍의 ‘테우’라는 뗏목을 공짜로 태워주는 경합이 붙었다. 또 풍선에 각자의 소원을 써서 하늘로 날리는 행사 수백 개의 풍선이 바람을 타고 하늘높이 올라가는데 금방 눈앞에서 사라진다.

 

▲ 쇠소깍 해맞이를 보러 해변에 모여든 사람들     ©시티뉴스

 

붉은 구름 속에 숨은 해는 수십 갈래 쏟아지는 햇살을 수평선에 걸친 신비로운 모습만 연출 할 뿐 볼 수 없었다. 새해의 소망을 바라는 어머니들의 맘은 다 자식들이 잘 되길 기원하는 염원일 것이다. 나도 붉은 동녘바다를 향해 내 자식들이 잘 되고 손자녀가 건강히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한해의 무사평안을 빌었다.

 

하효마을 부녀회에서 마련한 새해 떡국을 나눠 준다. 김치와 수육까지 마련한 떡국을 얻어먹으려고 길게 늘어선 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는지 삼십 여분 정도 기다림 끝에 내 손에도 따끈한 떡국 한 그릇과 수육 한 접시가 쥐여졌다. 해변의 식탁에서 타는 장작불 사이로 서로 덕담을 나누며 떡국을 먹는 새해 아침, 이런 이색적인 경험도 내 팔자에 끼여 있구나 싶을 정도로 기분 좋은 새해 첫날을 선물 받았다.

 

큰 바구니마다 먹고 난 빈 그릇이 쌓여 있는데 긴 줄이 아직도 차례를 기다리는 것을 보며 이렇게 많이 준비한 마을인심과 부녀회의 수고에 갈채를 보냈다.

 

디저트로 나눠주는 솜사탕까지 먹어보려는 인파의 줄을 보며 옛날 어르신들이 한 말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무서운 새는 먹새‘라는 말이 떠오른다. 새해 아침부터 베푸는 떡국과 먹거리가 공짜라서 즐겁고 배부르고 가방에 넣은 귤로 발걸음도 가볍게 되돌아오는 길이다.

 

그때 보았다. 동쪽하늘 구름에 가려진 햇살이 북쪽에 자리 잡은 높은 한라산 전체를 찬란하게 비추는 따듯한 빛살을, 남한에서 제일 높은 한라산, 저 멀리 그러나 한손에 닿을 듯 가까운 한라산의 윤곽이 온통 새아침 햇살로 반짝이는 모습을.....

 

▲ 새해 아침의 한라산     © 시티뉴스

 

한라산 아래 산간마을까지 햇빛을 받은 큰 건물들이 모두 한눈에 들어오는 최고의 화폭! 멋지고 황홀했다. 그 한가운데 솟아오른 백록담! 시야에 들어오는 붉은 갈색인 한라산은 아직 눈을 품지 않았다. 시시각각 백록담에 얹힌 구름의 모양이 선명하게 자리를 바꾸는 새해아침 가장 멋진 제주의 일출이 한라산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경자년 올해 나는 또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숱한 덕담과 기원이 문자와 전화로 카톡으로 날아오는 또 날아 간 새해, 자식들 잘 되기만 바라는 평범한 하루의 일상이 한해가 될지 또 어떤 미지의 일탈이 나를 기다릴지 예측불허의 세월이지만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조천 시인의 집

제주에 가면 꼭 가보라는 곳을 알려주는 동료문우의 문자가 왔다. 만난 적은 없지만 이름으로는 오래전부터 구면인 손세실리아 ‘시인의 집’이다. 생면부지의 초면이라 머뭇거리다 이 나이에 무슨 낯가림이랴 싶어 버스를 탔다. 조천으로 가는 길이다. 설렘과 생각이 겹친다.

 

내가 시집과 산문집 다섯 권을 펴낸 글쟁이라고 해도 늦은 나이에 등단한 우리지역에서나 활개 치는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한 무명인이다. 우리나라에 넘치는 사람이 시인이다.

 

지자체에서 복지관에서 또 돈을 목적으로 하는 문학지에서 신인등단이라는 제도를 통해 양산하는 수많은 시인들 글쟁이들이 시인이란 명사를 무슨 벼슬처럼 앞에 달고 다니는 게 부끄럽다. 그래서 친한 문우나 지인 외에는 누가 나를 “허시인” 이나 “허선생님” 하고 부를 때가 제일 듣기 싫고 어색하다. “시 쓸 때나 시인입니다 제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하는 말도 귀찮아진 나이 작가회의 행사나 지방행사도 거의 불참이다. 또 자유분방한 젊은 문인들에게 민폐가 당연해 방콕으로의 은둔이 가장 편한 생활이 된 요즈음이다.

 

제주시에 가까운 조천읍은 서귀포와는 정반대편이다. 그곳에 ‘시인의 집’이라는 찻집이 있다. 손시인이 운영하는 작은 찻집이라고 친절한 네티즌들이 인터넷에 도배한 글을 읽으며 아름다운 해변도로를 달리는 제주일주도로 버스에서 내려 남원읍에서 제주터미널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제주버스는 관광지답게 큰 정류장마다 시간표와 안내방송이 나온다. 버스에서도 다음정류장과 지나갈 행선지 내릴 곳들이 화면과 방송으로 나온다. 작년가을 밭에 심었던 어린배추와 어린무가 세 번의 태풍에 다 쓸려서 다시 파종한 열무 같은 무밭이 이어지는 중산간마을이 나타난다. 겨우내 월동하고 삼월이나 사월에 수확한단다. 태풍이 쓸고 간 밭 절반은 묵밭이다.

 

제주로 가는 빠른 길이다. 그 길에 사려니숲길 입구와 제주삼다수 공장과 큰 목장이 있다. 도로 양편이 다 목장인데 수 십 만평은 족히 돼 보이는 초지가 말들의 먹이가 되는 목장이다. 초행길 눈길 닿는 곳마다 담아가고 싶은 풍경이다.

 

터미널에서 다시 조천행으로 갈아타고 몇 정류장을 지나 조천리에서 내렸다. 다행이 마을가게주인이 ‘시인의 집’을 알고 있어서 헤매지 않고 조그만 간판에 ‘시인의 집’ 이라고 쓴 찻집을 보았다. 백년쯤은 그 자리에 있었을 낮고 작은 집 그 옛날 외할머니나 작은 할머니가 혼자 사시던 모습의 그리움이 스며든 집 낮은 문턱을 넘어서자 사진으로 익힌 시인이 객을 맞는다.

 

▲ 서점을 겸한 작은 진열대     ©시티뉴스

 

 “시인님이시죠?” “네” 포근하고 따듯한 시인의 손을 잡으며 찻집내부를 둘러보았다. 입구에 서점을 겸한 작은 진열대에 수십 권의 책이 예쁘게 진열되어있다. 나는 시인의 시집 『기차를 놓치다』를 집어 들고 내 이름을 불러주며 서명을 부탁했다.“어머 허정분시인님 이시네요.” “저를 어떻게 아세요?” “광주사시잖아요, 저도 가보고 싶은 곳 이예요.” 손시인도 초면인 나를 구면처럼 알고 있었다.

 

이 먼 섬에서 내 이름을 기억해 주는 시인이 살고 있다니 울컥 감동이 말려온다. 너른고을문학회장인 윤일균 시인과의 통화 중에 잠깐 그녀와 전화기를 바꿔 주었다. 나도 작가회의 회원이지만 그분들은 오래전부터 올곧은 행사에 함께 해온 인연으로 친분이 돈독한 사이였다.

 

나는 준비해간 2019년 경기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를 받은 시집 『아기별과 할미꽃』에 시인의 이름과 덕담을 써서 건넸다. 그리고 조천 앞바다가 바라보이는 자리에 편히 앉았다. 차를 마시며 천천히 바다와 내부를 감상했다. 본체의 지붕을 얹었던 대들보와 서까래 추녀 아래로 통유리를 넣어 앞 바다가 모두 밀려들어오는 착각처럼 바다를 품은 작은 찻집이다.

 

차를 마시러 시인을 보러 주문한 책을 사러 오는 많은 독자들로 인해 이미 제주의 유명한 찻집으로 알려진 곳이다. 크고 작은 문화행사가 수시로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흰 벽면 제단에 모신 ‘소녀상’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조용히 내 시집을 읽는 시인을 바라보며 자꾸 아기별에 대한 기억의 편린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86개월을 지구별로 소풍 왔던 송아지눈망울을,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겠다고 어여쁜 엄지공주 그 모습대로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할미다.  아기별로 내 곁을 떠난 손녀가 그린 그림에 덧붙인 시, 다시 볼 수 없다는 망막한 그리움이 이곳까지 와서 내 눈을 찌른다. 안 아프겠다던 헛말은 애정의 표현일 뿐 시시때때로 아파서 그리워서 눈물을 쏟는 할미꽃이 나다.

 

“선생님 유진이 내 품에 안겨주러 오셨군요,” 촉촉 젖은 그 한 문장의 감성이 찌르는 통증, 나는 성급히 배낭을 메고 시인은 그런 나를 꼭 끌어안는다. 그 찻집골목을 다 나오도록 나를 배웅하던 따듯한 눈길, 나는 눈물을 닦으며 서귀포 행 버스에 올랐다.

 

그녀는 1963년생 나보다 11살 아래다. 정읍 출생의 시인으로 『기차를 놓치다』 『꿈결에 시를 베다』 산문집 『그대라는 문장』을 펴냈다.

 

시 ‘바닷가 늙은 집’에서 제주 해안가를 걷다가/ 버려진 집을 발견했습니다/ 거역할 수 없는 그 어떤 이끌림으로/ 빨려들 듯 들어섰던 것인데요 둘러보니/ 폐가처럼 보이던 외관과는 달리/ 뼈대란 뼈대와 살점이란 살점이 합심해/ 무너뜨리고 주저앉히려는 세력에 맞서/ 대항한 이력 곳곳에 역력합니다(중략)...... 조천 앞바다 수십 수만 평이/ 우르르우르르 덤으로 딸려왔습니다(중략)......라고 2014년도에 제주에 입도한 사연을 풀어낸다. 시집을 들고 오는 길 제주일주도로를 버스로 답사하는 곳곳 해안과 집과 아름다운 농촌 전경이 한편의 시며 그림이다.

 

▲ 시인의 집 창문을 통해 보이는 바다     © 시티뉴스

 

나는 그날 밤 ‘손바닥 안에 잡히는 지도를 들고/ 초행길 조천으로 가는 버스를 탔네/ (중략)......나는 별이 된 아기의 그림을 시인의 품에 안겨주고/ 못 본 척 등 돌려 시린 눈물을 감추네/ (중략)’..... ‘시인의 집’ 이란 퇴고도 안한 시 한편을 써놓고 지금도 망연한 심정이다.

 

2018년도에 별이 된 아기와 할미꽃이 함께 쓴 시집 『아기별과 할미꽃』의 끝없는 슬픔을 나눠 가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면서......


* 허정분: 시집 『벌열미 사람들』 『우리 집 마당은 누가 주인일까』 『울음소리가 희망이다』 『아기별과 할미꽃』 산문집으로 『왜 불러』 등이 있다. 한국작가회의회원, 너른고을문학회원, 2019년경기문화재단창작기금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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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06 [10:40]  최종편집: ⓒ 시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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