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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서 가장 길고 가장 평안한 휴가중
<허정분 여행기> 제주 살이...두 달 살아보기에 몸을 담다
허정분

어디론가 무작정이라도 떠나고 싶었다. 가을의 끝 무렵 청주공항에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들 내외와 손녀가 동반하는 여행이었지만 나는 내 일생에서 가장 긴 휴가를 선물 받은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양극의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대한항공 기내 창밖으로 반도의 중앙쯤이라고 짐작되는 도시들이 휙휙 지나가고 푸른 산맥이 자나가고 어느 사이 검푸른 바닷물의 시계(視界)가 펼쳐진다. 기장이 제주공항에 착륙한다는 방송을 하고도 이십여 분은 바닷물 위를 선회한 비행기가 긴 활주로위로 달리고 있다.

 

▲     © 시티뉴스

 

제주도다. 4억 년 전 화산폭발과 함께 생성된 화산섬, 그 불덩이 돌덩이 위에 백록담이 자리 잡으며 빗물을 받아 식물을 키웠다 또 아득한 세월이 흘러 짐승이 살고 척박한 검은 화산 석 바위를 인간이 삶의 터전으로 바꿔놓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까마득한 세월이 수많은 모래알처럼 흘렀으리라. 먼 옛날 임금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유배지로 보내지던 섬 삼다도라 불리던 제주에 발을 디뎠다.

 

이런 저런 모임에서 몇 번은 관광차 왔다간 섬이지만 옛날일이다. 하루만 지나도 건물 한 채가 뚝딱 서는 전광석화의 시대다. 낯설지만 우리나라 제일의 관광지다운 매력이 공항부터 이색적인 섬,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이국적인 나무가 먼저 반긴다. 워싱턴야자수와 먼나무라는데 먼나무의 가지 끝에 조롱조롱 달린 빨간 열매는 꽃보다 더 아름답다. 아들은 미리 예약한 렌터카 회사에서 차를 빌려 제 식구와 나를 태운다.

 

서귀포시에 예약했다는 ‘제주에서 한 달 살아보기’ 원룸으로 향하는 길이다. 제주시내를 벗어나자 네비가 길을 안내하는 도로변마다 이색적인 나무와 동백꽃 감귤나무의 순례지다.

 

성판악코스인가는 잘 모르는데 도로 양옆에서 가지 끝을 맞댄 채 마지막 잎새를 물들인 나무터널의 아름다움은 절경과 동시에 감탄사를 연타로 터트리게 한다. 인위적인 아름다움이 따라가지 못하는 자연의 어울림, 나무는 서로에게 가지를 뻗어 바람을 막아주고 신비한 나무동굴을 스스로 만들었다.

 

나무터널을 벗어나 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풍경마다 왜 제주를 천혜의 관광지로 손꼽는지 알 수 있었다. 삼다도란 지명처럼 우선 검은 돌의 고장이다. 이곳은 벽돌이나 나무 혹은 철로 된 담장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옛날처럼 갈대이엉으로 지붕을 두르고 새끼줄로 엮은 초가집도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다. 도로변 경관 좋은 터마다 한결같은 서구식집들이 이국적이며 그 사이사이 자리 잡은 주황빛 감귤 밭, 가지가 찢어질 정도로 매달려 있다. 도로변도 주먹만큼씩 큰 노란 하귤이 주렁주렁 매달려 눈길을 끈다.

 

이정표도 안보고 네비의 안내로만 한 시간 이상을 달려 온 자동차가 어느 건물 앞에서 안내를 종료하겠다는 인사를 한다. 효돈동 이라는 마을이다. 편리하지만 정나미 떨어지는 기계를 발명한 건 분명 인간인데 기계에 끌려 다니는 것도 인간이다. 짐을 풀고 보니 한두 사람이 살기에 딱 알맞은 살림살이가 제대로 배치되어있다. 침대, 옷장 그릇 욕실과 인터넷 선까지 완벽하다. 먹을 것과 입을 옷만 가지고 오면 해결되는 살림이다.

 

이층 큰 유리창 멀리 바닷가가 분명한 검푸른 해안선 침엽수까지 보인다. 준비해 온 양념 외에 나 혼자 한 달 동안 먹을 쌀이며 반찬을 사기위해 마트에 다녀오고 우리 네 식구는 유명하다는 제주산 은갈치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     © 시티뉴스

 

이튿날은 우리나라 최남단 끝이라는 섬 마라도를 보러 나섰다. 숙소에서 차로 한 시간을 가서 마라도 가는 배를 탄다고 하니 꽤 먼 거리다. 1990년도에 첫 출항을 해서 오늘까지 무사고 운항을 기록한다는 선장의 자랑과 함께 막 떠난 항구 제주 송악산 아래 비경이 눈에 들어온다.

 

변산의 채석바위를 닮은 바위구릉아래 펼쳐지는 주상절리의 장관, 어느 장인이 저런 장관을 연출하랴, 제주에는 저런 주상절리로 이루어진 명승지가 많다고 한다. 신이 깎아 세운 수백 개의 검은 기둥 곁으로 가파도의 긴 섬이 따라온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철썩이는 파도 저 검푸른 생명력의 물비늘아래에는 무수한 생명들이 공존하며 먹히고 잡히는 생존경쟁도 펼치면서 무한한 바다의 품에서 종족을 퍼트리고 삶의 무대를 헤엄치리라. 저 망망대해의 끝 모를 호연지기가 철썩철썩 내 가슴에도 새 바람을 불어주길 바라는 경건함으로 잠시 명상에 잠겨도 본다.

 

한때 “마라도 짜장면 시키신 분!” 하는 핸드폰으로 주문한 짜장면을 바다로 배달 온 이창명과 김국진이 전파를 탄 적이 있다. 별 생각 없이 스쳐간 광고의 효과를 그날 마라도에서 보았다. 선착장위에 올라선 순간 눈에 들어오는 짜장면 집, 모두 짜장면 집 간판이었다.

 

세상에! 여기 국토의 최남단이라는 이곳에 누가 짜장면을 먹으러 올까 싶은 우려는 나만의 기우였다. 점심시간을 넘긴 시간인데도 하선하는 승객마다 이집 저집 짜장 집으로 숨어들어 우리가족도 자연스럽게 첫 집으로 들어가 짜장과 짬뽕을 시켜먹었다. 육지와 다른 맛은 톳이라는 해산물을 더 넣었다고 한다.

 

약 1만평이 된다는 마라도는 원래 울창한 원시림이었는데 1883년 김씨라는 사람이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하자 원님에게 간청하여 나씨 이씨 강씨등과 함께 숲을 불태우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사람이 사는 마을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곳에 살던 많은 뱀과 개구리등도 그때 모두 사라져 없다고 한다. 그 후 나무를 심어도 잘 자라지 않는 민둥섬 이었다는데 지금은 섬 중앙부에 숲이 조성되어 있다.

 

▲     © 시티뉴스

 

마라도는 조그만 섬이라 천천히 감상하며 걸어도 한 시간이면 섬 전체를 다 볼 수 있는 도로가 섬전체로 이어져 있었다. 그 섬 절반까지 짜장 집이 삼십여 곳은 되는 듯 했다. 그 많은 가게들이 운영은 되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아이들을 가르쳤을 가파초 마라분교와 절, 교회, 성당, 태양광 발전소 각 나라의 등대모형 등을 비롯해 선인장 군락지 등이 섬 전체에 고루 소재해 있는 곳이다.

 

국토 최남단비가 서 있는 곳에서 손녀와 기념사진도 찍고 다시 제주로 가는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제주가 거센 파도가 부딪치는 뱃전에서 자꾸 맴도는 느낌이다.

 

숙소가 있는 효돈동이다. 육지의 숱한 가게에서 만나는 효돈감귤의 원산지 마을이다. 아들부부와 손녀딸이 다시 육지로 가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남아있는 낯선 섬, 생일선물로 받은 내 일생 최고의 휴가를 어떻게 보낼까 눈길 닿는 곳마다 검은 돌담길과 황금빛 귤이 달린 귤 밭이다.

 

제주가 섬 전체에 올레 길을 조성하고부터 넘쳐나는 관광객으로 제주 땅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고 한다. 그 넘쳐나던 중국관광객은 사드라는 폭탄에 아예 전멸하다시피하고 일본인들도 우리 정부가 일제강점기 보상을 요구하는 징용문제로 수출중단 이라는 강수를 쓴 아베수상의 오기에 많은 관광객이 발길을 끊었다고 한다.

 

덕분에 여름철 넘쳐나는 관광객을 받던 많은 숙소들이 자구책으로 내놓은 싼 방세로 제주살기를 광고하는데 나도 편승한 셈이다. 화사한 햇살이 불러내는 유혹, 도로건너 돌담길로 들어섰다.

 

며칠을 주변을 돌아다니며 지리를 익혔으나 어느 한곳 매력적이지 않은 곳이 없다. 축축 늘어진 감귤은 한 가지에 얼마나 많이 매달렸는지 어느 가지던 땅으로 휘어져 있다. 가지가 찢어진 나무도 보이고 종류가 다른 나무도 보인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귤 밭 돌담길에서 사람을 보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 한참 귤 따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관광객들도 유명한 곳으로 찾아가서 이런 귤 밭은 체험으로나 찾아오기 때문이다.

 

▲     ©시티뉴스

 

검은 돌담에 기생하는 담쟁이 보라색 달개비 다육이며 이곳 자생식물들이 기묘한 어울림을 선사하는데 길을 돌아가는 길을 잃었다. 가도 가도 끝없는 귤 밭과 경계석의 돌담, 완전 미로다. 자꾸 방향을 틀어 헤매며 큰 도로가 나오길 기대해도 또 다른 길의 미로, 무서운 생각도 든다. 그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화물차를 세웠다.

 

귤 따러 온 주인내외는 이방인이 길을 잃었다는 애원에 여기서 하나로마트까지는 차를 타고 가야 한다고 차에 타란다. 그렇게 그분내외가 하나로마트에 나를 내려놓았다.

 

그 후 나는 길을 잃는 귤밭 돌담 둘레길이 아닌 2km 정도가면 있는 명승지 쇠소깍으로 발길을 돌렸다. 검은 해변 이라고 불리는 검은 모래가 처음에는 지명처럼 쇠를 깎아서 나오는 쇳밥 같아서 그렇게 불리는 줄 알았다.

그곳에는 제주에서 이름난 천제연폭포 휴애리 송악산 올레길 아래 주상절리보다 더 기이하게 아름다운 풍광이 울창한 원시림아래에서 나를 맞는다. 오리 길을 걸어 온 피로가 단숨에 가시고 쪽빛바닷물과 백록담이 발원지인 민물이 합수한 에메랄드빛 호수에 넋을 놓는다.

 

얼마나 세월이 흘렀으면 저런 큰 바위가 둥근 형태로 깎이는 것일까 4억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제 몸에 받아친 크고 작은 암반의 거대한 계곡, 또 절벽, 절벽에 갇힌 푸른 보석의 물길, 나는 그 아름다운 절경에 넋을 놓고 눈을 떼지 못했다. 제주명승지가 아니라 국가명승지라는 명성에 걸맞게 쇠소깍은 소가 누운 형태로 푸른 물을 온몸에 밴 호수(바닷물과 합수하는 곳이지만)로 객을 맞아 주었다.

 

이 아름다운 절경을 누가 창조하랴 하늘의 일이고 신들의 임무였다. 카누를 타는 연인과 절벽위에서 산책로를 따라 걷는 여행자와 또 뗏목을 연상케 하는 (노가 아니라 밧줄로 움직이는)네모난 나룻배를 타는 관광객의 감탄이 터지는 환호로 가득한 곳, 이곳에서는 인공적인 모든 사물이 전혀 보이지 않을뿐더러 의미가 없었다.

 

▲ 허정분 시인     © 시티뉴스

제주에는 제주를 한 바퀴 걷는 올레길이 스물두 구간으로 나눠져 있다. 이곳은 제 5구역에 속한 올레 길로 가방을 멘 여행자들이 심심찮게 지나간다. 또 쇠소깍을 중심으로 해변이 아름다운 곳이다. 해변 길을 따라 가노라면 근사한 찻집과 식당도 즐비하고 노란 들국이며 해국이 핀 해안가와 바닷물이 들락날락하는 바위에서 낚시꾼도 보게 된다.

 

그 바위틈에서 파도치기를 기다리며 생명 줄을 이어가는 홍합의 집단도 보고 주먹만 한 동그란 화산석이 솜방망이처럼 가벼운 돌도 찾아보았다. 아름다운 쇠소깍에 매료되어 며칠에 한 번씩 나는 이곳을 걸어서 다니며 곳곳에 감탄사를 놓았다.

 

제주 한 달 살이가 두 달 살이로 늘어난 지금 육지에서는 저물어가는 기해년을 의미하는 각종행사가 끊임없이 열리고 송년회와 신년회가 내 발길을 재촉할 계절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내 일생에서 가장 평안한 휴가를 제주에서 보내는 중이다.

 

* 허정분: 시집 『벌열미 사람들』 『우리 집 마당은 누가 주인일까』 『울음소리가 희망이다』 『아기별과 할미꽃』 산문집으로 『왜 불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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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2/23 [10:39]  최종편집: ⓒ 시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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