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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진실의 뿌리를 담고 자란다
<연재> 고 심미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가 남긴 유언장...1
시티뉴스
역사는 진실의 뿌리를 담고 자란다. 개인이던 집단이던 그것에 기초해 있는 한 역사적 진실은 생명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언젠가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2011년 말 한일 정상회담에서 강조됐던, 이명박 대통령이 종군 ‘위안부’로 명했던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 일제 치하 위안부로 삶을 살다 지난 2008년 2월 27일 향년 84세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 고 심미자 할머니가 남기 유언장은 그 실체적 진실에의 접근을 가늠케 하는 하나의 단서가 되고 있다. 또한 그 유언장을 살펴보는 것은 후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몫이기도 하다.
 
일본군위안부로서 생을 살아 온 심미자. 그는 홀로의 몸으로 현해탄을 넘다들며 13년간 법정 싸움을 벌인 끝에 일본 최고재판소로부터 ‘일본군위안부’로 인정받은 단 한 명의 할머니다.
 
1991년 12월 6일 동경지방재판소에 처음 제기했던 ‘아세아태평양전쟁 한국인 희생자 보상청구 소송’은 이후 2003년 7월 22일 일본 국 도쿄 고등재판소가 이 사건 항소심 선고를 통해 “항소인 심미자가 취득한 여지가 있는 손해배상 청구권의 제척 기간의 기산일은 한일 협정의 발효일 및 조치법 시행일인 1965년 12월 18일 (쇼와40)로 인정되나 항소인 심미자는 1965년 12월 18일(쇼와40)부터 제척기간(除斥期間) 20년 훨씬 경과한 1992년 4월 13일(헤이세이 4년)에 본소를 제기하여 손해배상을 요구한 것이기 때문에 동 손해배상 청구권은 제척기간이 경과한 시점에서 법률상 당연히 소멸됐다”고 판결, 배상 시효는 지났으나 함께 소를 제기했던 할머니들 중 유일하게 일본군 ‘위안부’로 인정받게 됐다. 
 
고 심미자 ‘일본군위안부’는 숨을 거두기 1년 여 전인 2006년 6월 20일 법무법인 시티를 통해 일제 만행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작성한 방대한 분량(7500쪽)의 유언장을 공증했다.
 
이 유언장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심미자 할머니가 박영길 전 경기도의회의원과의 만남 이후 심 할머니가 메모 형식으로 보관해 왔던 모든 자료들을 박영길씨의 도움으로 약 8년에 걸쳐 작성된 일본군위안부 할머니가 직접 기록한 대서사시와도 같은 기록물이다.
 
심미자 할머니가 살아생전 남긴 이 기록물은 일본군위안부가 남긴 국내 유일무이한 유언장이기도 하다. 
 
<시티뉴스>는 대서사시 같은 심미자 할머니의 유언장을 단독 입수, 유언장에 있는 내용들 중 기록에 의한 각종 자료에 입각한 유언 내용들을 가급적 원문에 가깝게 전문을 연재하기로 했다.
 
<시티뉴스>는 이 유언장이 한일 역사관계사의 실체를 규명하기에 앞서 일본군 ‘위안부’로 살아온 한 여인(고 심미자 할머니는 천안 망향의 동산에 잠들어 있다.)이 생을 다하기까지 비운의 역사 앞에 처절하게 절규한 모습을 통해 ‘역사 바로 알기’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 주>
 
▲ CD로 제작된 유언장을 들고 있는 심미자 할머니     © 시티뉴스

 
유언장 인사말
 
2006년 6월 20일 세계평화무궁화회 33인, 무궁화할머니 대표, 심미자
 
나 심미자(沈美子)는 일본국 소화 천황(昭和 天皇) 히로히토(迪宮裕仁) 군국 적 국가권력에 의한 태평양전쟁으로 인하여 희생이 된, 아시아 태평양전쟁 한국인 희생자 피해당사자로서 조선민족의 자존심이고 태평양전쟁사의 진정한 역사의 실체적인 진실과 엄연한 사실들과 일본군‘위안부’역사적 제 문제를 역사적, 법률적 육하원칙에 의한 검증, 확인, 증거에 의해 폭로, 고발, 증언, 유언, 할 수 있는 역사의 산 증인, 일본군‘위안부’입니다.
 
심미자와 일본군“위안부”들을 히로히토(裕仁) 군국주의적인 국가권력에 의한 태평양전쟁으로 인하여 침묵의 고통, 치욕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암울한 시절의, 15살의 피어보지도 못한 꽃봉오리와 같은 가냘픈 여린 꽃잎들이 일본정부와 일본 헌법 하에 군이나 관헌이나 순사에 의하여, 자유의사에 반하는 강압에 의한, 강제성으로 강제동원 및 납치당하여 일본군대 내 '위안소'라는 성(性) 착취의 심연 속으로 몰아 놓고“위안부”로 만들었습니다.
 
일본국은 태평양전쟁으로 인류전쟁사에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도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와 존엄성도 존중 할 줄도 모르는 인간의 기본적인 인륜의 도덕적 양심과 인격도 없는 미친개새끼들만도 못한 짐승만도 못한 일본군인 놈들인 황군(皇帝의 軍隊) 놈의 악랄하고 잔혹한 비인도적인, 만행으로 비참하고 처절하게 인권과 명예를 무참히 짓밟히고 유린당하면서 하루에도 2-30명에게 성폭행당하여 성노리개로 전락, 성노예생활로 몸과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져 만신창이가 되어 병마와 고통으로 가슴속에 풀리지 않은 '한'을 깊이 간직한 채 죽음을 앞두고 절망의 시대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나 심미자 일본군‘위안부’는 봉서보통학교 5학년 수업시간에 15살의 어린학생을 일본순사가 사상이 불건전하다고, 주재소 지하실 고문실로 끌고 가서 진정 참사람의 새끼라면 할 수 없는 짓거리로 성폭행을 한 후에 반항한다고, 전기 고문, 인두 고문, 대꼬챙이 고문을 한 후 일본군대 후쿠호카 기꾸부대 내 ‘위안소’에다 몰아 놓고 ‘위안부’로 만들었습니다.
 
▲     ©시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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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설명> 심미자 본인은 15세 어린나이에 학교 수업시간에 짐승만도 못한 야만적인 일본순사 놈에게 강제 납치당하여 성폭행 당하고, 사상이 건전치 못하다고 고문실에 끌려가 팔다리를 전기 고문 당하여 현재 한쪽다리와 팔이 짧고 가늘어 날이 흐리면 온몸이 쑤시고 고통이 심함!
 
▲     © 시티뉴스
▲     © 시티뉴스
<위 사진설명> 심미자 본인을 그 짓도 모자라 사람새끼라면 차마 할 수 없는 짓거리로 짐승만도 못한 야만적인 일본 놈이 시뻘겋게 불에 달군 인두로 어깨를 무자비하게 짖어 살이 지글지글 타는 인두 고문 당하여 죽고 싶은 고통도 참고 견디었다. 지금도 어깨에는 흉터가 흉하게 남아있다!
 
▲     © 시티뉴스
▲     © 시티뉴스

<위 사진설명> 심미자 본인을 대나무 꼬챙이로 엄지손가락을 무자비하게 사정없이 쑤셔대는 바람에 전기고문과 불에 달군 인두로 지저대는 인두고문은 죽지 않고 견디었으나 대꼬챙이 고문은 도저히 고통을 못 이겨 정신을 잃고, 까무러쳐서 졸도하여 생각이 안났다!
 
심미자 본인은 지금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그 때 그 고문으로 엄지손가락이 신경 줄이 끊어 저서 지금 보시는 것과 같이 흉하게 삼각형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눈을 떠보니 일본 땅 후쿠오카(福岡) 기꾸부대라는 보충대“위안소”라는 곳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짐승만도 못한 야만적인 일본군인 놈들인 황군(皇帝의 軍隊)놈 새끼들의 악랄하고 잔혹한 반인도적인 만행으로 인권과 명예를 유린당하고 성폭행당하고 성노예생활로 불행한 운명이 시작 되었다.

세계평화무궁화회<일본군‘위안부’33인, 무궁화 할머니> 대표, 심미자 할머니는 누구인가?

1924년 02월 04일 경상남도의 마산이라는 곳인, 아버지 심상만씨와 어머니 김인순씨 사이에서 출생.
1940년 03월 15일 외할머니 宅인,黃海道 延白郡 鳳西面 鼎村里 250番地 鳳西普通學校 記憶?
1940년 03월 15일 鳳西普通學校 5學年 15살에 전기, 인두, 대꼬챙이 고문으로 의식, 불명?
1940년 04월 20일 눈, 떠보니 일본 땅 후쿠호카 기꾸부대 위안소, 이때부터“위안부”생활?
1943년 08월 15일 독립자금, 한용운/김마리아/안성호/윤치호/이성호/이봉찬/윤봉근/나자연!
2005년 08월 15일 현재, 한국정부에 등록된 235명, 일본군“위안부”할머니들 중 한 사람!
1991년 12월 06일 동경지방재판소, アジア太平洋戰爭韓國人犧牲者 補償請求 訴訟 13년 재판!
2003년 07월 22일 동경고등재판소, アジア太平洋戰爭韓國人犧牲者 補償請求 訴訟 13년 재판!
2004년 11월 29일 동경최고재판소, アジア太平洋戰爭韓國人犧牲者 補償請求 訴訟 13년 재판!
2001년 12월 07일 동경지방재판소 고이즈미, 이시하라 야스쿠니신사 참배, 위헌소송 04년!
2005년 05월 15일 동경고등재판소 고이즈미, 이시하라 야스쿠니신사 참배, 위헌소송 04년!
2003년 03월 13일 정대협 나눔의 집 모금행위 및 시위동원 금지 가처분 신청, 재판 03년!
2004년 12월 29일 정대협 나눔의 집 모금행위 및 시위동원 금지 가처분 신청, 항고 03년!
2005년 06월 04일 정대협 나눔의 집 모금행위 및 시위동원 금지 가처분 재항고 재판 03년!
2005년 08월 15일 현재 서울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 모두 기각, 당한 힘없는 패소자!
2005년 04월 17일 심미자! 동료 일본군“위안부”심달연에게 사기로 고소당한, 피의자이다!
2005년 08월 15일 심미자! 현재 본인은 대구지방검찰청 죄명 사기, 이현옥, 도망가 계류 중!
2005년 04월 18일 지만원 박사님 정대협과 나눔의 집 등의 명예훼손 고소 건, 참고인 이며!
2005년 04월 18일 지만원 박사님 정대협 등 나눔의 집 등의 1억 8천 민사 건, 참고인 이다!
1992년 05월 01일 심미자! 정대협, 내, 무궁화자매회 61명, 일본군“위안부”투표로 회장!
1993년 05월 01일 심미자! 회장, 본인 외, 61명, 북한공작원, 정대협이 발길로 차, 쫓아냄!
1992년 06월 10일 심미자! 외 일본군“위안부”5명, 조계종에 도움 요청 나눔의 집, 창설!
1992년 06월 10일 심미자! 외“위안부”들 쫓아내고, 중국서 6명 수입, 수요시위 앵벌이시킴!
1953년 08월 15일 심미자! 간난 애 키워, 딸 2명<고졸> 아들 1명<연세대> 졸업시켜 결혼시킴!
1998년 02월 26일 沈美子! IMF로 국가부도 위기에 금 모으기 운동 적극, 참여, 1,400,000원!
2003년 10월 28일 沈美子! 亞細亞女性基金 招請, 오끼나와 圓卓會議 韓國 代表로 參席했다!
2004년 11월 29일 沈美子! 東京最高裁判所 參席, 함, 13年 만에 本件 抗訴, 모두, 棄却임!
2004년 11월 29일 沈美子! 日本國會 訪問, 東京 最高裁判所 上告審 不服 抗議 記者會見 함!
2004년 11월 30일 沈美子! 亞細亞女性基金 伊勢桃代局長 禮訪, 上告審 不服 抗議 뜻 傳達!
2004년 11월 30일 沈美子! 日 100만 自治勞 笠 見 猛<KASAMI TAKESHI> 副委員長 禮房, 協助!
2004년 12월 02일 沈美子! 大畠章宏/Ohata Akihiro 日本 衆議院 民主黨議員 禮訪, 向後 協助!
2004년 12월 02일 沈美子! 이미경 40名 거짓, 議政報告, 岡崎卜彡子/Tomiko OKAZAKI 參議員!
2004년 12월 02일 沈美子! 日本國 外務省 亞細亞大洋州局 地域政策課 所管 部署, 抗議 訪問!
2004년 12월 02일 沈美子! 日本 東京大學 法學政治學 大沼保昭/ONUMA敎授 主管 및 學生 證言!
 
심미자가 제기한 소송 사건

1991年 12月 06日 東京 地方裁判所 アジア太平洋戰爭 韓國人 犧牲者 補償請求 訴訟? 13年!
2001年 12月 07日 東京 地方裁判所 고이즈미, 이시하라 야스쿠니 神社 參拜 違憲訴訟? 04年!
2005年 08月 01日 駐韓日本大使 面談 고이즈미 總理 8.15 야스쿠니 神社 參拜 反對書翰 傳達? 02年!
2007年 08月 15日 아베 신조(安倍晋三) 總理 謝罪, 反省, 辭退, 自決하라! 遺言狀 傳達? 01年!
2003年 03月 13日 挺隊協 나눔의 집, 募金行爲 및 示威動員 禁止 假處分申請, 裁判? 03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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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1/02 [12:44]  최종편집: ⓒ 시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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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기 12/01/02 [21:21]
아주 예전에 내가 박영길 의원님하고 막역하게 지낼 때, 심미자님의 자서전이라는 걸 가지고 와서 프린트한 후 원본은 돌려드리고.......... 자서전 내용을 가지고 청소년용으로 작품화시켰는데, 출판사에서 (위안부 이야기책이 너무 많다)고 하여 이제껏 출판도 못 하고 있었는데, 아하, 그 이야기군요. 내가 쓴 원고의 테마는 오히려 (못난 한국인들)입니다. 심미자님 자서전 내용을 주요 골격으로 하면서 위안부 문제 대처에 있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못난 존재인지를 밝히는, 욕 얻어먹어야 할 한국인들 이야기입니다. ............ 좀 드라마틱하죠.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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